2025년 목회서신
2025년 1월 19일 <세상의 소금>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마태복음 5:1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주님은 우리를 소금이라고 하셨을까요? 소금은 한가지 특성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은 짠맛입니다.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쓸모가 없습니다. 짠맛은 독특합니다. 짠맛은 소금으로만 낼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 예수의 제자는 독특한 맛을 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서 독특한 맛을 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세상 사람들과 구분이 안 된다면 그것은 짠 맛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소금은 여간해서 맛을 잃지 않는 성분입니다. 그런데 소금이 맛을 잃는 것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이스라엘의 소금은 대부분 사해에서 나옵니다. 사해 주변의 염석(암염, 석염, rock salt)을 캐서 갈은 후에 소금으로 사용했습니다. 소금이 다른 물질과 섞여 있습니다. 암염을 갈아서 자루에 담아 보관할 때 잘못 보관하면 소금은 물에 약하므로 진짜 소금은 녹아 없어지고 다른 물질만 남게 됩니다. 소금 맛이 안나는 돌들을 버렸습니다. 사람들이 밟고 다녔습니다.
소금은 맛을 내는데 꼭 필요한 물질입니다. 또한 방부제의 역할을 합니다. 음식을 오래 보관하기 위해서는 얼리거나 말리거나 소금을 뿌렸습니다. 소금을 썩는 것을 방지합니다. 방부제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바닷물은 썩지 않습니다. 바닷물 속에는 소금이 있기 때문입니다. 평균적으로 전 세계 바닷물의 염도는 약 3.5%입니다. 소금은 바닷물의 3.5%로 바다물을 짜게 만듭니다. 바닷물이 얼지 않고 썩지 않게 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적은 수였지만 세상의 소금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오늘 그리스도인들의 수는 많습니다. 오늘날 사회는 부패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 세상이 타락한 이유는 내가 소금의 맛을 잃어버렸고 방부제의 역할을 못했기 때문이라는 반성과 회개가 있어야 합니다. 소금은 소량만 있어도 제 역할을 합니다. 소금이 녹아야 제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맛을 내고 부패를 방지하는 소금 같은 존재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025년 1월 12일 <천국의 소망>
1980년 3월 프랑스 파리의 한 병원에 한 세기를 떠들석하게 했던 최고의 지성인이 입원했습니다. 그는 한 달 동안 병원에서 의사와 간호사에게 고함을 지르고 방문한 사람들에게 소리를 지르며 발악을 했습니다. 그는 죽음에 대한 공포 때문에 자기의 병명이 무엇인지를 아내에게조차 묻지 못했습니다. 아내 또한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남편에게 그의 병명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소리치고 괴로워하는 남편을 위로해주지 못하고 지켜보아야만 했던 불쌍한 여인과 20세기 최고의 지성인, 이 사람은 자유라는 이름 하에 수많은 글을 써서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던 무신론적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Jean Paul Sartre, 1905~1980)이며 그의 부인은 시몬 드 보부아르입니다. 사르트르는 입원한지 한 달만에 두려움 속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나고 난 후에 프랑스의 신문들이 떠들기 시작했습니다. 사르트르가 왜 비참하게 죽어야 했는가? 죽음으로부터의 자유를 외쳤던 그의 마지막이 비참했던 이유가 무엇인가? 그때 한 독자가 신문사에 투고한 기사가 실렸습니다. “사르트르의 말로가 비참했던 이유는 사르트르에게는 돌아갈 고향이 없었기 때문이다.”
반면에 미국의 피터 마샬 목사님은 세상을 떠날 때에 눈물을 흘리는 아내에게 웃으며 말했습니다. “천국에서 다시 만납시다.” 그리스도인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는 주님이 예비하신 천국 영원한 본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요 14:1-3). 하나님이 허락하신 생애동안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열심히 살다가 주님이 부르시면 주님 곁으로 가서 이 세상보다 더 좋은 천국에서 영원히 살 것이므로 우리는 주님이 언제든지 부르시면 달려갈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육신의 장막집이 무너져도 우리에게는 영원한 하늘의 집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손수 지으신 집, 이 땅의 어떤 집보다 더 좋은 집에서 주님과 영원히 살 것이므로 우리는 소망중에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인생 최고의 날은 언제일까요? 천국을 사모하는 자에게 죽는 날은 인생 최고의 날입니다. 영광스런 집에 들어가는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죽음은 ‘이제, 영원한 하늘 본향 집으로 돌아 갑니다. 그곳에서 또 만납시다.”하며 세상에서의 잠깐의 이별일 뿐, 영원한 본향집으로 가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이런 천국 소망을 가지고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2025년 1월 5일 <믿음 소망 사랑이 충만한 교회 (A Church Full of Faith, Hope, and Love)>
첫째, 믿음. 우리가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예수님)을 믿어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릴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에게 하나님과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릴 수 없습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은 말씀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히브리서 11장 1절은 믿음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성 어거스틴(St. Augustine)은 믿음에 대해 말했습니다. “믿음은 아직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것이다. 그리고 이 믿음에 대한 보상은 당신이 믿은 대로 보게 된다는 것이다.”
둘째, 소망. 성경은 우리 눈에 보이는 하늘과 땅보다 더 좋은 새 하늘과 새 땅이 있음을 말씀합니다. 이사야 65장 17절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은 예수님께서 마태복음19장 27-28절에서 말씀하셨고, 베드로가 베드로후서3장 13절에서 말했고, 사도 요한이 요한계시록 21장에서 기록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나라는 이 세상과는 질적으로 다르다는 의미에서 “새 하늘과 새 땅”이라고 부른 것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은 모든 것이 완전하고 아름다운 곳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그곳에는 다시는 죽음이 없습니다. 다시는 질병이 없습니다. 다시는 눈물 흘리는 일이 없습니다. 그곳은 하나님의 거룩함과 사랑의 질서가 실현되는 곳입니다. 성도들은 이 아름답고 영원한 나라에서 영생의 복을 누릴 것입니다. 바울은 그곳을 체험하고 와서 그곳을 낙원(paradise)이라고 불렀으며(고후 12:4), 예수님께서도 그곳을 낙원이라고 하셨습니다(눅23:43). 새 하늘과 새 땅은 천국을 의미합니다.
셋째, 사랑. 우리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가장 큽니까?”라고 묻는 한 율법사의 질문에 주님이 대답하시기를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22:37-40). 사도 바울도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롬 13:8)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롬 13:10)고 했습니다.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우리에게 믿음, 소망, 사랑이 항상 있어야 하는데 그중에 사랑이 제일이라고 하십니다. 사랑은 영원하고 완전합니다. 우리 성도님들이 믿음 소망 사랑이 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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