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나셨을 때 새가 지저귀는 소리를 들으면서 “참 좋다!”라고, 예배드리기 위해 교회로 오실 때 짙은 푸른색의 나무를 보면서 “참 아름답다”라고 느끼셨습니까? 우리가 언제 “좋다”라는 감정이 생기고, 언제 “아름답다”라는 느낌이 들까요? 18세기 독일의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는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꽃이 본래 아름답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인가? 아니면 꽃을 보는 사람의 마음이 아름답다고 느끼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인가?” 이 말은 꽃의 아름다움이 객관적인 사실인가? 아니면 주관적인 판단인가? 라는 것입니다. 꽃은 객관적으로 아름답습니다. 모든 사람이 꽃은 아름답다고 동의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꽃은 바라보는 사람이 주관적으로 아름답다고 느껴야 아름답게 보입니다. 꽃 자체가 아름답지만, 때로는 우리의 마음이 딴 데 가 있거나, 마음이 심란하고 삐뚤어져 있으면 꽃을 보아도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합니다.
사실은 꽃이 아름답다는 객관적인 사실보다, 꽃을 아름답게 보는 우리의 눈과 마음이 더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만드신 세상의 모든 만물이 아름답다는 것은 이미 주어진 사실인데도 우리 마음의 상태에 따라서 그 아름다움을 느낄 수도 있고, 느끼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면서도 그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불행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의 눈(심안 心眼), 영의 눈(영안 靈眼)이 열리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호흡이 있는 자마다 하나님을 찬양할지어다”(시 150:6). 그러나 누가 하나님을 찬양합니까? 호흡이 있는 자, 숨을 쉬는 자가 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위대한 일,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원의 은혜를 아는 자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들에 핀 백합화도 입히시고, 공중을 나는 새도 먹이시며, 세상의 것(의식주) 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자들을 보살펴 주십니다. 하나님은 홀로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우리의 하늘 아버지이십니다. 우리가 이것을 알고 사는 날 동안 하나님께서 만드신 세계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느끼고 찬양하며 사시길 바랍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 이름을 높여드리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세상의 고난을 이길 힘과 믿음과 지혜를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