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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두 가지 차원

글을 읽다 보면 ‘그러므로’와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두 개의 접속사를 자주 만나게 됩니다. 이 두 접속사는 책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 속에 있는 현실입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대부분의 일들은 언제나 이 두 가지 중에서 하나에 속합니다. 순접의 삶이 있는가 하면 역접의 삶도 일어납니다. 성경도 인생을 ‘그러므로’의 차원만으로 이해하지 않습니다. 바울이 복음을 열심히 전하므로, ‘그러므로’ 복음이 널리 전파되었습니다. 그가 로마교회를 방문하기를 간절히 기도했지만(롬 1:10),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가지 못했고, 자신의 병이 낫기를 간절히 기도했지만(고후 12:7-9),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고치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그러므로’와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두 차원이 만든 바울의 삶의 모습입니다.

인생에 ‘그러므로’와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차원이 있듯이 신앙에도 두 가지 차원이 있습니다. ‘그러므로’의 신앙이 있어야 합니다. 심은 대로 거두는 법입니다. 기도를 하면서 요행을 기대해서는 안됩니다. 이와 함께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이 생길 때 좌절하고 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하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므로’의 사건이 일어나면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예상치 않는 일들이 생길 때에도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역시 감사하십시오. 현재의 사건이 인생의 최종적인 결론이 아닙니다. 인간은 현재만을 알 뿐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건들 뒤에서 일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무슨 일을 만나든지 그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게 되면 그 일은 마침내 우리에게 유익이 됩니다. 잘 되어도 교만하지 말고, 잘 안 되어도 절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의 삶에 ‘그러므로’나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일이 있다면 그 일들을 통해서 하나님을 깊이 만나기를 바랍니다. 이 두 개의 접속사 뒤에 있는 하나님을 보는 신앙의 눈을 갖게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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